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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전차의 흔적을 찾아서

by 글짓기그니 2025. 8. 24.

 

부산 거리 위를 달리던 전차는 한 세기 전 시민들의 발이자 낭만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1915년 첫 전차의 등장부터 사라진 이유, 그리고 오늘날 남아 있는 흔적까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부산 전차의 흔적을 찾아서
부산 전차의 흔적을 찾아서


1915년 첫 전차의 등장

오늘날 부산은 도시철도와 수많은 버스 노선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교통 도시입니다. 하지만 100여 년 전, 부산의 거리를 달리던 교통수단은 바로 전차였습니다.

부산의 첫 전차는 1915년 5월, 일제강점기 시절에 등장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항구도시 부산을 조선의 관문으로 삼아 근대화를 진행했고, 그 일환으로 전차가 도입된 것이죠. 좁은 골목과 언덕이 많았던 부산 도심에서 전차는 획기적인 교통수단이었습니다.

전차는 전기를 동력으로 움직였고, 도로 위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달렸습니다. 당시 시민들은 “하늘에 매달린 쇠줄(전깃줄)을 타고 달리는 마차”라며 신기해했습니다. 요금은 비교적 저렴해 서민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었고, 덕분에 부산은 서울보다 빠르게 대중 교통의 ‘근대화’를 맛본 도시가 되었습니다.

전차는 단순히 교통수단을 넘어 부산의 풍경을 바꿔 놓았습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종로와 남포동, 서면을 오가는 전차는 도시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부산의 근대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바다와 함께 달리던 낭만의 전차 노선

부산 전차의 매력은 단순히 빠른 이동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노선 자체가 바다와 도시 풍경을 품고 있어, 탑승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자 추억이었습니다.

대표적인 노선은 부두 – 남포동 – 서면 – 부산진역을 잇는 노선이었습니다. 항구에서 막 도착한 사람들은 전차를 타고 남포동 시장을 지나 서면으로 이동했고, 부산진역에서 열차를 갈아타 서울이나 대구로 향하기도 했습니다. 전차는 부산의 상업과 물류를 잇는 중요한 교통망이었던 셈입니다.

특히 바닷가를 따라 달리던 구간은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됩니다. 광복동과 남포동 일대에서 전차를 타면 탁 트인 바다와 항구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고, 밤에는 불빛 가득한 항구가 차창 밖에 펼쳐졌습니다. 연인들에게는 최고의 데이트 코스였고, 아이들에게는 소풍 못지않은 즐거움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부산 사람들은 전차를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낭만의 상징으로 기억했습니다. 커피 한 잔의 추억이 다방에서 태어났다면, 바닷바람과 함께 달리던 기억은 전차가 남겨준 선물이었던 것이죠.

 

안타깝게도 부산 전차의 시대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68년, 버스와 자동차가 대세가 되면서 전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전차의 선로와 전깃줄은 철거되었고, 그 자리는 도로와 현대식 건물로 채워졌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흔적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부산 곳곳에는 전차의 존재를 기억하게 해주는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 남포동과 중앙동 일대 : 좁은 도로와 특이한 곡선 구조는 전차 선로가 있던 흔적을 여전히 보여줍니다.
  • 사진과 기록 : 옛 신문 기사와 사진 속에는 바닷가를 달리던 전차의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 부산박물관이나 근현대사 자료관을 찾으면 전차 모형과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문화재와 스토리텔링 : 최근에는 부산시와 지역 연구자들이 전차의 역사를 관광 자원으로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전차가 달리던 길을 따라 도보 관광 코스를 만들거나, 전차를 테마로 한 전시회가 열리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전차를 직접 경험한 세대의 기억입니다. 어르신들은 여전히 “첫사랑과 함께 탔던 전차”, “학교 가던 길에 뛰어올라 탔던 전차”를 이야기하며 그 시절을 회상합니다.


사라진 전차가 남긴 의미

부산 전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부산의 근대화와 함께 달린 도시의 기억이자, 바다와 항구의 낭만을 품은 상징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버스와 지하철, 심지어 자율주행차까지 이야기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전차가 주던 느릿한 속도와 풍경은 오히려 지금 세대가 그리워하는 가치이기도 합니다.

부산 전차의 흔적을 찾아보는 일은 단순히 옛 교통수단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부산이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추억을 재발견하는 과정입니다. 언젠가 다시 부산 거리에 전차가 달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기억만큼은 시민들의 마음속에서 계속 달리고 있을 것입니다.